백두대간의 기.지맥

[스크랩] 한강기맥 돌아보기

수정산 2010. 11. 23. 19:22

모처럼 블로그 작업을 한다.

처음시작은 꾸준히 올릴 생각이었으나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화초를 가꾸듯이 많은 관심을 갖고 가꾸어야 하는탓에

게으른 천성탓에 꾸준히 작업을 하지 못한것이다.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은 것은 언젠가 기억속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이렇게 블로그 작업을 해 두고 두고 보려고 한다.

 

 

 

 

이제 한강기맥도 종료 1회차를 남기고 있다. 오대산부터 양수리에 이르는 산줄기를 따라 걷는 14회차의 산행길 마지막 구간만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시작할때 양수리에서 서먹서먹한 얼굴로 찬바람 맞으며 기념사진 촬영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것이다. 어느세월에 다 할 것인가. 걱정도 많이 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그 종료 싯점에 서 있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양수 종합고등학교 뒷산을 오르기시작해 많은 산도 지났다. 물론 나는 아내와 같이 산행을 하였다.

같은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힘들고 지친 험한 산중턱에서 물 한모금, 과일 한 조각을

나눠 먹으며 시원한 바람을 함께 쐬다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부분이 많아 진다.   

나보다 산행을 잘하기에 늘  서투른 내게 타박이 심하다. 배낭싸는게 엉성하다, 빠릿빠릿하지 않다, 서두는것이 없다 는 등, 그렇게

얘기하면 나도 할 말은 있다. 산에 가는 주가 되면 아주 난리 법썩이다. 일요일 산행인데도 금요일, 심지어는 산에 다녀온 다음날 부터

바로 시작이다, 공부한답시고 다음 코스를 미리 인쇄해서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개인블로그 몇군데 들려서 산행후기를 읽어보고

참고가 될것은 빼꼭이 메모를 한다. 이런것은 그렇다 치고 산에가기 전날 밤 9시만 되면 배낭챙기는 시간이다. 우비, 갈아입을 옷,

수건, 손수건,,,,, 하나라도 빼 먹으면 또 구박.... 에혀

산행 당일 새벽 04:20 알람은 귀를 깨우고 구수한 밥냄새는 코를 깨운다.  산행을 나설려면 아직도 한시간반이나 남았는데

무엇을 하는지 왔다 갔다. 주방에서 안방으로 또 베란다로....또 붙박이장 여닫는 소리가 쿵쿵거려 옆집이 미안할 정도다. 무엇이 그리도

많은지....나는 억지로 05:10쯤에 일어나 대충 씻고 싸놓은 도시락 가방넣고 쇼파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한다. 잠이 깰정도로 향이 잘 나는

헤즐럿을 주문하면 산에 갈 욕심인지 여전히 생글거리며 커피를 내린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물끄러미 앉았다가 주는 커피를  받아 먹고

잠을 물리치고 나서 옷갈아 입고 스틱챙기고 모자와 썬글라스, 지갑 등을 허둥지둥 챙기고 집을 나서기 전에 다시한번 주방등을 돌아 본다.

그렇게 나서는것이 05:45 정도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느낄 그 시간이다. 싸늘한 바람과 남아있는

어둠은 초가을을 지나 무르익은 가을로 이미 들어섰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긴 나도 한기가 느껴져 긴팔 등산복에 조끼를 걸쳤으니 .....

 

육교를 건너 시청앞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4019, 703, 706번이 간다. 기다리면서 스트레칭도 하고 우리아파트 쪽과 풍림아파트쪽 공사장을 바라본다. 그 곳은 예전에 미미 예식장과 미미 연립이 자리하던 곳이다.뒷 쪽은 한 창 재건축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앞쪽은 아직 소식이 없으나 아마도 뒷 공사를 마치고 할 모양이다. 주상 복합상가가 들어선다고 하는데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뒷쪽 아파트 조감도를 보면 북한산 자락 홍은동 끝자락을 다 막아서는 것 같다. 풍림아파트와 새로 들어설 아파트가 도로에서 바라다 보이는 산을 다 막는 것이다. 입주해서 살 사람들은 뒤에 커다란 정원을 갖게되어 좋겠지만 도로에서 바라다 보는 산세는 콘크리트로 가려 보이지 않을 것같다. 우리집에서 내 뵈던 63빌딩과 안산의 일부어 어쩌면 막히게 될 것같다. 그 공사현장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버스가 육중한 사각형 얼굴을 들이민다.  시청역에 도착하면 길게 늘어선 버스행렬이 눈에 띈다. 교통의 요지다 보니 여행을 가려는 버스가 덕수궁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 각종 민원인들을 보게 된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히는 현장이다 보니 늘 시끌벅적하고 부산한 곳이다.

 

지난달 4월이었던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다음날도 대한문 앞 그길을 지금의 복장으로 아내와 지났다. 예의 다정한 모습의 대통령은 등산복 모자를 쓴 차림으로 흰 국화로 둘러싸여 향내를 맡고 있었다. 내심 지지했던 사람인지라 분향을 할까 했지만 행동하지 않은 양심으로 뒤로 돌아서고 말았다. 그 마음은 시청앞에서 노제를 하는것을 지켜보고 있는 날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빚으로 남아있다. "삶과 죽음이 다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더냐" 라는 말로 최후의 승부수를 던지고 초연히 세상과 연을 끊은 그 이를 생각하면서 언제라도 봉화마을을 찾아가 볼까 생각만 굴리고 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사랑과 지지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강력한 카리스마에 뿌리한 권위에 익숙한 우리는 ....

그렇게 역사의 현장을 등산복을 입고 남의 일처럼 묵묵히 지켜보며 대한문 앞을 지나 버스에 승차하였다.

 

산행을 하다보면 들머리에서 40분 정도가 가장 힘들다. 늘 하는 산행인데도 불구하고 호흡이 차고 숨이 가파오는것은 어쩔수가 없다. 아마도 들숨과 날숨그리고 긴장되어 밀려 오는 박동이 서로 혼란을 일으켜 그러지 않는가 생각한다. 워밍업없이 산행을 해서 그런것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땀이 날 정도로 워밍업을하고 산을타면 좀 덜 한것 같은데 차에서 내리자 마자 마라톤하듯 산길로 접어들면 한동안 박자 맞추기가 힘들다. 그럴때면 선두에서 조금 뒤로 쳐지더라도 호흡을 가다듬고 리듬을 탈때까지는 여유를 잡고 걷는것도 좋은것 같다. 산나물을 찾는 재미도 솔솔하고 야생화 찾아보는것도 좋다. 주변에 눈을 주며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산행할 몸이 만들어 져 있다. 선두를 유지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것보다는 내 산행을 하는 기쁨에 흠뻑 빠지는것이 좋다는 것이다. 다른사람의 보폭에 맞추다 보면 더 힘들어 진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면 그때부터는 제법 탄력도 붙고 컨디션도 되 살아난다.

 

3월 22일 했던 2회차구간( 농다치 고개부터 용문산 비슬고개 ) 기억에 특히 남는 구간이다. 

산에 가자면 말 꺼내기가 무섭게 달려들던 아내가 산 초입부터 힘들어 하는것이다. 아마도 아침먹은게 체한 것 같단다.

그래도 좋아 지겠지 하면서 후미로 쳐져 산행을 계속해 보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심 좋아지길 기대했지만 아내는 힘들어 한다.식은 땀을 흘리고 토하기 까지 하는것을 보고 산행을 계속하는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미 대장님에게 탈출을 말씀드리고 박대장님에게 전화를 넣으니 마침 차가 농다치 고개에 있단다. 얼마나 다행인지 거기에 책과 여벌옷이 담긴 보조가방이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비가와서 질척거리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택시타고 서울로 향했다. 아마 산행도중 탈출하는 것은 아내나 나나 처음인것 같다. 그렇게 2회차를 못하고 나니 숙제가 앞에 쌓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긴은 해야 하는데 언제하지 아내 눈치를 보니 곧장 다가오는 일요일에 도전할 것같은 표정이었다. 일을 미루고는 못견디는 채질을 탓해야지....일주일 뒤 우리는 짐을 싸서 용문산역으로 갔다. 다시 택시를 타고 탈출한 그길로 숙제를 하듯 들어섰다.  몇일간 내린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선답자가 없는 듯 산길에 쌓은 눈은 그냥 하얗게 쌓인 그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고 우리는 지도를 믿고 걸었다.멀리 용문산이 흰눈에 쌓여 바라 보였다. 눈은 허벅지까지 쌓여있고 용문산 공군op를 감싸고 도는 철책선길은 왜 그리고 험하고 아슬아슬하던지....산행은 역시 일행과 함께해야 고생을 덜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2회차 구간에 돈도 엄청 깨졌다. 회비는 회비대로 택시비는 택시비대로 .....많이 들었지만아내가 건강한 몸으로 그 길을 같이 걷는것이 내겐 큰 위안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피치 못하게 산행을 못하는 경우도 가끔있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휴일까지도 담보로 잡혀있는 인생이란 참으로 한심스럽다. 산행을 못하는 날은 왠지 몸도 마음또 깨름하다.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겠구나 생각하고 부러워 하다보면 농촌에서 한가롭게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농부가 되었는 내가 되곤한다. 직장에 다니지 않고 농촌에서 밭일구며 살면 마음대로 떠날수 있을까? 개도 한마리는 키우고싶고, 소도 한두마리는 키우고 싶은데, 텃밭에는 채마를 가꾸고 싶은데 어찌 집을 비울수 있겠는가....두고 두고 연구해야할 것 같다. 산도 취미도 생활이 있고나서 있는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빠지게 되는날은 우울모드로 접어든다.

 

어느 한구간 정들지 않은 곳, 좋지 않은 곳이없었지만 산행길에 눈에 들었던 곳은 최진실의 묘지가 있었던 곳이다. 첫번째 산행코스에 있었던것 같은데 들려서 방명록에 이름 석자 써두고 저 세상에서라도 마음편히 쉬라 위로를 했건만 그 안식처에서도 편히 쉬지 못한 모양이다. 안타깝고 측은한 생각에마음이 외로웠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하고 뭇 남성을 잡았던 여배우, 결혼과 이혼, 자녀들의 성씨를 모계로 지정하기위해서 애를 썼던 엄마, 소속사 사장의 죽음 등....삶을 리셋하고 싶었을까? 그렇게 떠난 만인의 연인은 지금이라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를 기원한다.

 

 

유명산 활강장과 촬영장 세트도 멋진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쌓여 질퍽거렸지만 영화세트장은 동막골 사람들이 순박한 얼굴로 "뉘쇼?"하고 나오던가 인민군 상좌가 따발총을 갖고 뒤짐을 하고 있을 법한 곳이었다. 운두령에서 불발령길도 너무 아름다운 길이었다. 내가 뽑은 최고의 길이 아닌가 싶다.

 

 

 

 

불발령에서 운두령으로 가야하지만 어프로치 관계로 운두령에서 잡았는데 내게는 최고의 길이었던것 같다. 허리까지 차는 산죽 길, 아름들이 참나무나무, 야생화....말나리, 짚신나무, 모시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운 산세를 뒤덮었던것 같다. 부드러운 산길도 역시 최고였던것 같다. 불발령으로 내려와 흐르는 시냇물에 몸을 잠그고 더위를 식혔다. 자은리였던가....고냉지 채소의 재배가 한참이었던 곳 ....아주 좋았던것 같다.

 

 

 

 

그리고 구목령으로해서 신대리길로 남진했던 상계봉구간역시 좋았던 것같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것은 신대리 계곡 깊은 소에서 목욕을 했던것이 기억에 남는것같다. 그야말로 산속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뛰어들어 어린시절로 돌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몇년만이었던가 물장구 치며 혼자서 그렇게 멱을 감은게 물속에 잠수하여 눈을 떠도 눈이 하나도 아프질 않았다. 그렇게 여름을 마감한것 같다. 여름휴가를 가지는 않았지만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20여분 그렇게 물장구를 치며 소년으로 돌아간 기억을 갖게 해준 이 산행길이 너무도 고맙다.

 

노루궁뎅이 버섯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오대산 구간을 종주했던 13회차에 뜻하지 않는 횡재를 했으니...그것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라면 행운이랄수 있다. 늘 여유를 갖고 산행을 하던 부부가 그날따라 막걸리 먹고 있는 우리를 앞질러 갔다. 우리는 농담삼아 늦어서 용아장성을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대장님의 말에 한표씩 보태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얼마를 가니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은가? 그들 부부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하고 손에는 말로만 들었던 노루궁뎅이 버섯이 들려 있었다. 야....예전에 다른사람들 카페에서 구경을 했던것을 여기서 보게 될줄이야.....살아있는 나무에 버섯포자를 내려 그것이 버섯으로 자라는 것이다. 실례를 무릎쓰고 만져본 느낌은 너무도 부드럽고 이뻤다. 뾰족뾰족 돋아있는바늘침이 박힌듯 촘촘하게 나있는 버섯모양이 참으로 예쁘고 부러웠다. 부러움반 시새반으로 그때부터 내 눈은 길바닥 보다는 참나무, 떡갈나무 위를 쳐다보게 되었다. 나도 하나 따야 된다하는 일념으로 몇번을 허방짚기도 했다. 얼마간 가다보니 어떤분이 또 한개를 따는 것이다. 그 부러움이란....나도 따보고 싶다...나도 따면 얼마나 좋을까..나도 딸수 있을거야....두리번거리며 가다보니 으~아!!! 드뎌 나의 작은 눈에 하얗고 이쁜 버섯이 걸려있는 참나무가 들어왔다...그 감격, 앞서 가던 아내도 좋아라 내게 힘을 실어주고 같이 산행하던 모든 회원님들의 부러움 어린 눈길을 한몸에 받았으니 .....하지만 너무 높았다. 지상으로 부터 약 350cm정도의 높이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나무에 오르기도 싶지 않았고 난 따고 싶었다. 스틱을 연결해 보지만 별로 신통찮았다. 결국은 억지로 오르기로 마음 먹고 두팔로 참나무를 감싸고 온갖 기를 다 썼다. 조금 올라가 어렵게 한손으로 나무둥치를 붙들고(생각해 보면 마치 나무늘보 같았다) 스틱의 앞부분으로 찔러서

따려다 혹 버섯에 상처가 날까봐 손잡이 부분으로 지긋이 밀어서 따냈다. 밑에서 노심초사 보고 있던 아내는 이윽고 탄성을 지른다....상기된 얼굴의 아내는 냉큼주워서 신문에 싸서 자기 가방에 넣겠단다. 여지없이 노루궁뎅이 였다. 그 벅차는 감격을 산행내내 간직했다. 어떻게 해서 먹을것인가 ?집에 와서도 씻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하니 술을 담는 사람도 있고 차로 끓여 음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분은 튀김해서 먹는 분도 있었다. 노루궁뎅이 버섯이 요즘은 배양에의해 재배되는 것이란것도 거기서 알았다. 하지만 야생버섯과 어떻게 같을수 있겠는가. 술도 좋아하고 먹는것도 좋아하는 지라 어떻게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행동이 앞서는 아내는 다음날 담금술을 사오고 쇠고기르 사와서 반은 술을 담그고 반은 쇠고기를 구워먹으며 먹는것으로 결정을 해놓고 퇴근하는 날 기다리고 있었다. 술병에 담긴 노루궁뎅이 버섯을 보면서 므흣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날 보고 아내는 그렇게 좋아 한다. 그래 당신이 내 맘을 알어? 술잔에 술이 차있을때 술병에 맛있는 술을 담?을때 그 기분을 당신이 어찌 알겠어 더욱이 오늘은 산돌배까지 담았으니....ㅋ.   곱게 자른 버섯을 쇠고기와 함께 구워 막걸리 한잔을 거치는 저녁식사는 살살녹는 기분이었다. 엄밀하게 말을 하면 버섯만의 맛은 모르겠다. 그냥 살결이 부드럽다는 생각외에는 쓰지도 달지도 않은 맛이었다. 하지만 체감지수는 상황버섯이 부럽지 않았다. 담과둔 술은 영춘지맥이 끝날때 회원들과 마시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길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길을 함께 걷는사람들....산행을 하다보면 여러 길동무가 생긴다. 사람을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여러 사람들을 사귈수 있었지만 원체 술을 좋아하다보니 자제를 하기위해 가깝게 하지 못한것이 아쉽다. 산행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이 없으니 궂이 말을 섞지 않아도 충분히 고마운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비슷한  취미를 갖고  몇개월을 산행하며 눈인사 주고 받았던 모든분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오대산에서 시작하여 두물머리에 스러지는 한강기맥을 막연히 시작한게 3월 봄기운은 빠르고 겨울기운은 늦은때였다. 근 7개월가까이 20여명이 서로위로하면서 격려하면서 함께했다. 조금 더 보고 느끼고 했어야 했던 땀의 땅이었다. 산줄기 몇개 타고 다 탔다고, 알았다고 감히 이야기 하지는 못하지만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을 그 근거들을 끄집어 내어 보았다. 기억에 의존하고 아내의 블로그에 의지해서 이렇게 글로 써 보았다. 기록이란 추억할 것들을 따로 모아서 간직하고 저장하는 것이다.

다음 영춘지맥을 할때는 좀더 세밀하게 보고 느껴 알찬기록으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비부리처럼 노랗던 풀잎이 이젠 손을 대면 베일정도로 세다.

바람은 차가워 지고 옷은 두꺼워 지는 이때 마치는 산행이 못내 아쉽다.

 

 

 

 

 

 

 

출처 : 흔적없는 삶...
글쓴이 : 지기 원글보기
메모 : 함께 여름을 다 보내고 또 한해가 지나 금남정맥을 하다보니 기맥산행을 돌이켜 보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