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또 말했잖아
우리들의 남아 있는 生이
지는 해의 석양빛을 받는
겨울나무 숲의 떡갈나무 잎새임을
바람 불면 우수수 지는 해를 닮아간다고
너 내려놓으라고
물기 없는 자궁처럼 자랑할 것 하나 없는
누렇게 뜬 얼굴 매달아
겨울바람 앞에 저항하지 말고
어서 내려놓으라고
네가 또 말했잖아
꽁꽁 가슴 닫고 마른 잎맥 고집하지 말라고
푸른 초장에 목책 둘러 너와 나
구별하지 말고 모난 얼굴 강바람에
햇살 담은 물살에 제살 깎일 때 아파
아파 소리 질러 그믐달이 되었다가,
보름달이 되었다가 갯벌가 별빛 받아
수숫대 닮은 억새풀 흔들어
허물 벗어 강물에 띄우라고
네가 또 말했잖아
가벼워지라고
실패도 아픔도 제왕의 화관도
아름다운 면류관도
이제는 기억의 미로를 헤매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훈장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세월
무거워 벗어던지는 인습의 고통 같은 제복
어서어서 홀랑홀랑 벗어던져 가벼워지라고
네가 또 말했잖아
가볍게 비우는 것이 채워지는 것이라고
그믐달로 아프게 비워내어
빈 항아리 빈 들녘 되어
기억의 조각들 민들레 씨앗처럼
폴살폴살 바람의 날려
마법 걸린 푸른 헬리오트로프의 향기 내몰아
온전히 비우라고
그래야 예수를 만날 수 있다고...
{외할머니의 사진첩} 중에서
~*고옥분 님의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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