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향기/◈ 법정스님 향기

법정/영원한 자유를 찾아서

수정산 2020. 11. 24. 14:15

우리가 여행을 떠난 것은 우선 일상의 따분한 굴레에서 벗어나
낯선 풍경이나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그넷길 위에서 시들어가는 일상적인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해보려는 그런 소망에서 벼르던 끝에 길을 떠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뭣보다도 먼저 마음부터 느긋하게 먹어야 할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려도 보고
이끼 낀 기와지붕 위로 열린 푸른 하늘도
한번쯤 쳐다보고 산마루에 걸린 구름이며
숲 속에 서린 안개에 눈을 줄 수도 있어야 한다.

굴뚝이며 빛 바랜 단청과 벽화 같은 것에도 눈길을 돌려볼 일이다.
시멘트로 뒤덮흰 아파트 단지 같은 데서는 불 수 없는 우리 고유의 문살 같은 것도
한번쯤 유심히 눈여겨 볼 만하고 기와집 추녀 끝의 영원으로 이어진 그 곡선에도
눈길을 보낼만하지 않은가

불교 신자가 아닐지라도 불상의 온화한 그

미소를 대함으로써 날로 표정을 잃고
굳어져가는 우리들의 얼굴을 되돌아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저 불상의 미소가 오늘의 우리 얼굴과 어떤 연줄을 가지고 있는지
지나간 촌수를 한번 따져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시냇가에 가서 구두와 양말을 벗어버리고

맑게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가보라. 머리끝까지 전류처럼
흐르는 차고 부드러운 그 흐름을 통해 더덕더덕 끼어 있는

먼지와 번뇌와 망상도 함께 말끔히 씻길 것이다. 그리고
물소리에 귀를 모을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고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갈 곳이 어디인가를
소리 없는 소리로 깨우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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