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인천

창덕궁의 가을

수정산 2022. 10. 27. 17:00

창경궁을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창덕궁이다.

창덕궁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은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을 창건했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 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 되지 않았고, 270여 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 제1의 정궁으로 

역할 하였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하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궐이란 별칭을 같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궁궐 예제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복궁 역시 이 제도를 따랐다.

그러나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은 인위적인 제도를 벗어나 주변 자연 지형에 순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 되었다.

왕실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구성은 경희궁 덕수궁 등 다른 궁궐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1917년에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 짓는 등 많은 건물들이 변형,

훼손 철거 되었다가 1991년부터 복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으며 동궐의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예로 평가된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낙선재

낙선재는 왕의 서재 겸 사랑채이다.

헌종의 자신과 효정 왕후 사이에 자식이 없자 1847년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이 하면서 중희당 동쪽에 낙선재를 지었다.

이듬해에는 석복헌을 지어 수강재와 나란히 두었다. 석복헌은 경빈의 생활공간이었으며, 수강재는 어린 왕을 대신하여

왕실 어른으로서 정사를 돌본 순원왕후를 모신 곳이었다. 헌종의 뜻에 따라 낙선재는 단청을 입히지 않아 외형이 소박하며

외국 문물에 대한 왕의 기호를 반영하 듯 낙선재의 창살 무늬와 상량정의 건축 양식 등에서 청나라 양식을 볼 수 있다.

낙선재의 현판 글씨는 청나라의 문인 섭지선의 글씨이며, 대청마루 앞 주련에는 김정희의 스승인 옹방간의 글씨가 있다.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을 뒤로하고 경복궁으로 이동한다.

고궁과 자연과 아름다운 어울림은 언제 들려도 참 좋다.

감사합니다.

2022. 10. 26. 수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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