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좋은방/◈좋은글 모음방

오래된 기도

수정산 2023. 12. 31. 11:48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 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

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

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이문재*~

감사합니다.

'나눔의 좋은방 > ◈좋은글 모음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  (0) 2024.01.26
사랑은 나무와 같다  (0) 2024.01.23
시간이 지나야만 볼 수 있는 별  (0) 2023.12.24
사랑을 보낸다  (0) 2023.12.18
흔들리며 피는 꽃  (0) 2023.12.16